시가 있는 여행에세이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 출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심명숙 | 기사입력 2024/03/28 [19:55]

시가 있는 여행에세이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 출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심명숙 | 입력 : 2024/03/28 [19:55]

[이트레블뉴스=심명숙 기자] 남아메리카와 이집트, 인도네시아, 스페인, 모로코, 알래스카, 에티오피아 등 지역의 여행기를 모은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 는 지역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산문과 시, 그리고 사진으로 담아낸 기록집으로, 작가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느낀 심정과 풍경을 이 작품집에서는 작가의 개성을 담아 산문과 시로 표현하여 '현대작가사'를 통해 발간했다.

 

▲ 시가 있는 여행에세이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 표지 

 

▲ 박동규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 평론

한경 시인의 여행수필집 ‘나미비아 사막과 성자’ 시인의 시가 있는 여행수필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동규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내가 알고 있는 한경은 시인이다. 그리고 ‘심상’을 통해 등단한 지 오래된 중견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다양한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쓴 한경 시인의 여행수필을 읽으면 수필 속에 그가 지닌 엄청난 지적 호기심에 대한 집념과 한 인간의 원형적 사람의 본질과 그 문화적 현상에 대한 갈구에서 얻어진 체험보고서라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로부터 알래스카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다니며 겪은 체험과 그 지역에 담긴 문화양식과 생활을 그만의 특유한 시선으로 기술한 ‘나미비아의 사막의 성자’는 한경 시인이 온몸으로 만든 역작이라고 할 것이다.

 

1. 이집트와 나일강에서의 유랑, 그의 이집트 편에서 피라미드에 관한 자세한 설명 중에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적은 낙서에 관한 글 중에 한경 시인의 개인적 소감을 살펴보자.

 나일강이 범람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농한기 농부들의 복지정책의 하나로 대체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견해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낙서를 해독해 보니, 오늘은 돈을 얼마 받았다느니 과일과 고기와 각종 생필품을 받은 목록을 적어 놓기도 하고 과음으로 일을 못 한 날짜도 적혀있다고 한다. 또 감독관과 싸워 며칠 일을 안 나갔더니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 나왔다는 낙서가 있다는 글을 읽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고대 남자들도 오늘날의 남자들도 마누라의 바가지가 무서운 건 큰 틀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07쪽)

 

그의 여행기에는 학술적 담론보다는 신기한 문화와의 만남에서 그만의 감각으로 얻을 수 있는 개성적 체험의 예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서술은 그의 여행이 그만의 시선을 가지고 사물과의 만남을 준비한 것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사적 유물이 가진 기본적 데이터를 수없이 제시하고 또 그 사물이 지닌 기본적 의미도 힘껏 찾아내려고 한 점은 그가 ‘정직한 여행자’로서의 입지를 지켜나가려 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인다.

 

2. 스페인과 모로코의 문화적 향기 다음 나일강의 풍경을 담은 시편을 보자. 

야자나무 사이로 보이는 

흙벽돌의 낮은 집들 

수천 년 동안 이어지며 

여전히 강가에 빨래하는 아낙네들

 

하늘이 내려주신 옥토에 씨를 뿌리고 

가족들 배부르면 그저 행복한 촌부 

오늘도 작은 배를 저어 고기를 잡는다

 

(중략)

 

왕의 이름을 모르면 어떠리 

빨래터 아낙네의 방망이 소리 

살아있으므로 꿈틀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툭 떨어지는 야자열매 하나

- 나일강의 풍경 -

 

이 시는 그가 나일강에서 얻은 총체적 이미지를 집약하고 있다. 그에게는 나일강의 물살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에서 역사의 도도한 전개가 주는 상징적 의미의 뒷면에 감추어진 설화나 곡절보다는 그의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평온한 평화의 삶을 바라는 기원이 앞서있다. 그의 시에서는 왕이 누구였든지 강가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는 아낙네의 ‘방망이 소리’와 아이들의 생동적 ‘웃음소리’에서 시인이 포착한 것은 인간의 삶이다. 삶의 열매인 야자 하나가 무심한 공간에 ‘툭’ 떨어지는 소리는 살아있음의 몸짓인 것이다. 

 

그는 고단한 아프리카 여행에서 광활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먹이 사슬의 현장을 목격하며 신성한 의식을 보는 듯하다고 서술한다. 그런가 하면 거대한 신전에서 속설처럼 전해져오는 ‘앙트’ 열쇠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안내원에 넘어가서 1달러를 내고 앙트를 만지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는 여유를 보면서 그의 여행기에 담긴 그만의 생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모로코의 기행은 먼저 그가 딸과 함께 갔다가 다시 남편과 찾게 된 패서 기행이 있다. 모로코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구시가지 페스를 걸으며 보고 느낀 이야기는 마치 자세한 정밀도처럼 세밀하면서도 인간상의 면면을 그다운 시각으로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골목길의 특징은 정다움과 미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엮어져 있다. 고대 도시가 품고 있는 화려한 문양의 카펫과 아름다운 타일과 그릇 그리고 흙벽돌이 만들어 내는 신비스러운 풍경에 관한 것이다. 그가 십 년 만에 남편과 다시 찾은 페스에서 그는 남루한 이슬람 전통 복장인 젤라바를 입고 네댓 장 팬티를 펼쳐놓고 있는 초라한 노인의 회색빛 눈동자에서 무기력한 슬픔을 엿본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 부호들이 누리는 화려함의 극치도 마주한다.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의 명함을 놓치지 않고 스케치한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섬세한 관점은 그가 페스에서 느낀 감동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 골목길에서 맛있는 빵 냄새와 이 빵을 사려고 남녀노소 줄을 서 있는 광경 등은 삶의 현장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끼니로 몇 개 산 빵을 포장도 하지 않고 들고 가는 아이의 천진함은 그가 발견한 인간의 절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한시인이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으로 옮겨간 자리를 따라가 본다. 

 

그 첫 번째가 스페인의 붉은 성 ‘알람브라 궁전’이다 이 궁전은 이슬람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시대의 유명한 건축물이다. 이 건물에 관련된 한 시인의 글에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스페인의 작곡가 프란시스 타레가 이야기가 등장한다. 알함브라 궁전은 시인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지명인 것이다. 이 궁전이 낭만적 정취를 더하게 된 것은 가난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였던 타래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그 곡에 담긴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알려지면서이다.

 

시인도 역시 이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레가가 사랑한 여인은 유부녀였던 애제자 콘차 부인이었다. 하지만 부인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상심한 타래가는 스페인 곳곳을 유랑하다가 알람브라 궁전에 머물게 되는데 자신의 슬픈 처지와 달빛에 비추는 매혹적인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이 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타레가가 달빛을 보며 애절한 자기 마음을 실어 사모하는 애제자에게 곡을 헌정하며 구애를 했지만, 결국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랑 이야기가 담긴 알함브라 궁전에서 한 시인은 이제껏 가슴에 묻어두었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젊은 시절 시인에게 알함브라 궁전을 연주해 주며 기타를 가르쳐주었던 사람, 알함브라 궁전의 선율과 뗄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한 시인에게 알함브라 궁전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로망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선율에 같이 묻어나는 사람. 시인은 암묵적 암시 같은 노랫말처럼 어느 가을날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산책한 후 침묵 속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이 알람브라 궁전에 얽힌 사연의 굴레는 한시인의 감추어 두었던 사연과 연결되어 동질성을 지니게 된다. 

 

다음으로 한시인은 라만차에서도 돈키호테를 만나고 있다. 한시인은 ‘풍차 옆 양철로 만든 돈키호테를 보며 초등학교 시절 주인공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낄낄거리며 동화책을 읽던 기억’으로 출발하고 있다. 이를 향해 기억의 확신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요즘 같은 현실에서 타인을 위해 혹은 정의를 위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사람에 대한 상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는 인간은 어렵고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고, 이 도전을 통해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 ‘모로코와 스페인의 기행’은 문화의 생성과 발전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와 보고자 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이라 할 것이다. 

 

3. 아프리카 광활한 대륙의 한 마리 야생마

한경 시인이 25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은 그야말로 큰 결단 없이는 할 수 없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랄리벨라로 가는 길만 살펴보아도 험난하기 짝이 없다. 공항에서 내려 작은 버스를 타고 랄리벨라로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주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민들의 모습은 옷은 남루하였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고 한다. 이 아무렇지도 않은 주민의 옷과 표정에 대한 인상은 아프리카 대륙을 다니며 보게 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상을 지배하는 하나의 시각이 된다.

 

첫 도착지인 랄리벨라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가서 내린 호텔은 가난한 주거지역의 중심에 있었던 듯싶다. 식수통을 들고 다니는 주민을 본 때문일까 더운물은 없었어도 씻을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었다고 토로한다. 한 시인은 그 지역의 열악한 환경을 야생적 냄새가 풍긴다고 하고 오묘한 분홍빛 노을을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지는 호텔을 궁전이라고 표현했다. 

 

한 시인은 그 지역의 문화에 동화되려 하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본다. 시인이 석굴교회를 보고 메켈레로 가는 중간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차에서 내린 모양이다. 그들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들고 여행객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하며 손을 벌리고 있었다. 여행객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작은 초콜릿이나 과자를 아이들에게 건넨다. 흔히 있는 풍경이다. 이때 한 시인은 아이들 뒤 한발 물러서서 손을 내밀지 않고 서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이 짧은 순간 그가 본 것은 소녀의 눈빛이다. 우수가 어려있지만 도도한 눈빛이었다고 적고 있다. 시인은 이 아이들의 미래가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는 현실이라고 하면서 그녀의 눈에서 아픔이 느껴졌다고 했다. 빈손인 그녀에게 동정 어린 몇 푼을 차마 주지 못하고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에게 남아있던 작은 단위의 돈을 다 주고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다음의 시를 보자. 

 

매켈레에서 만난 소녀 

 

(생략)

 

레게머리에 

화려한 문양의 원피스

귀고리로 꽂은 옷핀과 

빨간 실 목걸이와 스카프

유난히 입술이 두툼한 아이

 

(중략)

 

그와 눈빛을 교환한 짧은 순간

 

그 눈빛에 압도되어 

가벼운 동정심의 

내 손이 움츠러들었다. 

 

(중략)

 

엉겁결에 누른 

사진 속 

깊은 우물 같은 우수

알 수 없는 슬픔의 무게로 

남아있는 그 눈빛

 

이 시에서 한경 시인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그가 바라본 아프리카 대륙 한 소녀의 눈빛 속에 감추어진 슬픔의 깊이다. 이 깊이는 이 소녀가 처한 열악한 환경과 암울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밝은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소녀의 처지 그의 강렬한 눈빛을 한 시인은 간과할 수 없었던 게다. 한때는 문명 대국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헐벗고 끼니를 이어가지 못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나라의 국민. 서구 세력의 침탈과 정치의 부패로 인해 생긴 삶의 변화로 그 고통이 소녀의 눈 속에 하나의 슬픔으로 내려앉아 있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이 자신을 돌아보며 인간다움의 환기를 밝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시인이 보여주는 기행은 인증사진처럼 사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생명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서아프리카의 나미비아를 보자. 

 

아프리카 서남쪽에 있는 나미비아는 생소한 곳이다. 19세 독일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에 패하면서 유엔의 승인 아래 남아공의 위임통치가 시작되었고 2차대전 후 남아공의 병합 시도가 있었으나 유엔에 의해 저지되고 1990년 겨우 독립국이 되었다. 나는 아프리카를 간 적이 없다. 한경 시인의 행로에 의지해서 미답의 길을 가는 동안 그가 보여주는 자연과 일상적 생활 이야기는 그가 나미비아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듯이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특히 주목해 볼 점은 그가 탄자니아에서부터 함께 한 오버 랜드트럭 체험이다.

 

트럭은 좌석과 간이 식탁이 장착된 대형트럭이다. 이 트럭을 타고 텐트 야영을 하며 며칠은 색다른 경험으로 스릴과 즐거움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의 광활한 초원과 동물뿐인 환경이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장거리를 움직이며 간혹 쉬는 휴게소 같은 노점 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캔디나 콜라 몇 개가 전부였다고 한다. 시인은 캔디를 낱개로 파는 가게에서 기사가 캔디 몇 개를 사서 먹는 것을 본다. 시인은 세밀한 시선으로 캔디 하나의 의미와 빈곤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유추하고 안타까워하며 여행은 계속된다. 

 

그는 이어서 나미브 사막에 들어선다. 이 사막에 있는 소서스 블래이는 ‘물이 끝나는 곳’으로 남태평양으로 흐르는 강이 끝나는 지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데드 블래이라고 불리는 고사목 지대는 ‘모래가 강을 죽여버린 지대’라고 한다. 이 딱딱한 바닥에 박혀있는 고사목의 모습을 시인은 처연하다고 했다. 건조한 탓에 썩지도 못하고 선 채로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나무의 모습을 ‘고독한 성자’라고 했다. 시인은 고사목에서 아프리카 사막에서 이들이 지닌 고독의 원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운문적인 묘사를 따라 나미브 사막에서의 체험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나미브 사막의 다른 이름은 오렌지 사막이라고 한다.

 

이 모래는 모래에 함유된 금속이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는데 햇빛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시인은 사구의 변화를 동물 뼈가 바람의 주술로 서서히 움직이는 것 같다고 했다. 철이 섞인 모래는 보통 모래보다 무겁다고 한다. 이 황톳빛 쌀가루같이 바람에도 날린다고 한다. 시인은 황톳빛 사막에서 옛날 불을 때서 시커멓게 그을린 부엌 벽을 황토에 물을 섞어 칠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불러온다. 그의 감상적 추억이 주는 감동이 사막과 마주하는 듯한 감흥을 일으켜 준다. 다음 글을 보자.

 

홍시 빛 사막에 내려앉은 사막 능선 아래, 뼈대만 남은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가 왠지 절대 고독의 표본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알 수 없는 먹먹한 슬픔, 쓸쓸하지만 고고함이 묻어나왔다.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이 사막에 와있을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331쪽) 환경 시인은 이 사막의 텐트를 날려버릴 듯 울부짖는 바람 소리, 사막은 숨 쉬고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아프리카는 이 사막의 빛으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4. 남미에서 캐나다까지 먼 필생의 여행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남미 이구아수 폭포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지구촌의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아놓았다. 그의 여행수필집인 ‘나미비아 사막의 성자’를 읽는 동안 인간이 지구상에 살면서 가지는 가장 소중한 마음의 욕망이 여행이라면, 그에게 여행은 세계의 아름다운 꽃을 찾아 가슴에 꽃밭을 만들고 가꾸며 피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의 개성적인 여행기를 이룬 그것은 그가 가고자 한 곳의 지역적 정보를 충실히 준비하고 또 무엇을 보겠다는 지표의 설정이 정확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그만의 특성을 보여준 것은 그가 사물의 겉면을 벗어나서 그의 감정적 촉각에 잡힌 정서를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한 점이다. 그가 사막에서 낙타를 만나서 느끼는 곤혹스러운 슬픔은, 삶의 한 동반자적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마치 손잡고 걸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을 나누며 만나는 이의 눈빛 속에 감추어진 진실한 마음을 서로 소통하려 하고 그들의 사연과 삶의 상관을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모로코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경 시인의 안내를 받아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한경 시인이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진작가인 그의 부군 사진과 세밀한 기록이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그의 화려한 여행수필집 발간을 축하하며,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갔다 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한 것이 중요하며 여행을 통해 인간다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을 넓은 세상에 내려놓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는 한 시인이 여행기는 쉼터처럼 시가 있어 신선함을 더해준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곳을 여행하여 뜻깊은 여행기를 많이 남기기를 기대한다.  

 

▲ 나미비아 사막의성자 작가 한경    

작가 소감.

바람의 숨결을 느낄 때면 습관처럼 어딘가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있다. 돌아옴을 전제로 한 일종의 방랑벽이라고 할까? 오대양 육대주 여행을 통해 여러 곳의 다양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 속 에서 인류가 만든 유적들을 본다.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을 보면서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종족 보존을 하며 일궈낸 문명을 마주하는 감회는 경탄과 감동이다.

 

각 대륙의 척박한 환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들이 남긴 몇천 년을 살아남은 유적들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 인간. 그들이 꿈꾼 영원한 삶이 신을 만들었고 그 믿음과 확신이 신의 이름으로, 찬란하게 꽃피운 유적들을 보노라면 숙연해진다.

 

생명이 죽음으로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고 흥망성쇠를 거치며 발전한 인류, 무수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오늘을 사는 나. 나의 생명도 50만 년을 이어온 끈이라고 생각하니 살아있는 내가 기적 같다.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여행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은 위대하고, 인연은 소중하다.

 

부족한 글 늘 격려해 주시며 '심상'지에 연재해 주신 박동규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과 기록으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반려자 이명식님과 이런저런 엄마의 투정을 잘 받아주는 아들딸 사위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여섯 명의 손자 손녀와도 기쁨을 같이합니다. 많은 여행지의 추억을 공유한 이상권 님 부부와 늘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여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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