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삶을 사랑하게 하는 시간, 웰다잉 체험을 마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가장 깊은 공부였다

이정인 | 기사입력 2026/06/30 [13:40]

다시 삶을 사랑하게 하는 시간, 웰다잉 체험을 마치며...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가장 깊은 공부였다

이정인 | 입력 : 2026/06/30 [13:40]

[이트레블뉴스=이정인 기자] 지난 토요일, 대한웰다잉협회에서 진행하는 웰다잉 심화과정 마지막 수업에 참여했다. 하루 동안 이어진 수업이었지만, 그 하루는 단순한 교육 이상의 의미로 내 안에 깊이 남았다. 그것은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을 더 온전히 사랑하게 만드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날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것은 함께 참여한 심화과정 40기 40여 명의 따뜻한 에너지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시간이 달랐고, 삶의 이야기도 달랐지만, 그 자리에 흐르는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였지만 어색함보다 미소가 먼저 오갔고, 눈빛 속에는 조심스러운 배려와 사람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   대한웰다잉협회 심화과정 40기 교육생들이 수료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인

  

그분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내가 정한 자서전의 제목을 떠올렸다.「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부제 「두번 째 봄」어쩌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두번 째 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젊음의 봄처럼 빠르고 화려한 계절은 아니었지만, 지나온 삶을 돌아볼 줄 알고 남은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들이 있다. 감사는 늦지 않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 사랑은 아끼면 후회가 된다는 것, 삶은 끝을 의식할 때 더 선명하게 피어난다는 것. 그날의 교육생들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두번 째 봄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들처럼 보였다.

 

수업을 이끌어주신 최영숙 교수님의 진솔함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교수님의 진행에는 과장된 권위가 없었다. 대신 삶과 죽음을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단단한 진심이 있었다. 때로는 환한 웃음으로, 때로는 깊이 있는 질문으로 참여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죽음을 무겁게만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게 소비하지도 않는 그 균형감 안에서 나는 깊은 신뢰를 느꼈다.

 

▲   대한웰다잉협회 심화과정 40기 교육생들이 입관체험을 마친 뒤 수의를 입고 삶을 다시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나누며  ©이정인

  

오전에는 마음을 여는 시간으로 새로운 사람과 짝을 이루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낯선 사람과 삶의 깊은 부분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웰다잉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솔직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안에서 나누고 있었던 것은 삶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사랑했는지, 무엇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용히 오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때, 오히려 삶의 소중함은 더욱 선명해진다. 끝을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을 허투루 살 수 없고, 마지막을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오전 과정에서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내 삶의 마지막 엔딩 파티’에 대한 이야기였다. 엔딩 파티는 죽음 이후에 진행되는 장례문화와는 다르다. 그것은 생이 끝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치르는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가 내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의미 있게 완성해보는 생의 마지막 축제이다.

 

▲   대한웰다잉협회 심화과정 40기 교육생들이 ‘두번 째 봄’을 응원하듯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삶을 다시 사랑하는 시간.  ©이정인

  

엔딩 파티는 정해진 형식이 있는 행사가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할 수 있는 삶의 의식이다. 누군가는 평생을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둘러앉아 웃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과 식탁을 나누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사랑했던 자연 속에서, 익숙한 공간 안에서, 오래 아껴온 물건들 곁에서 조용히 삶과 작별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파티가 ‘죽음을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시간의 마지막까지 온 마음의 에너지를 다해 삶을 축제로 완성하는 자리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나를 품어준 공간에게, 나를 위로해준 자연에게, 나와 함께 시간을 견뎌준 물건들에게 마음속 깊은 안녕을 건네는 의식이다.

 

삶에 안녕을 외치기 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먼저 안녕을 전하는 시간. 그것이 엔딩 파티의 본질일 것이다.

 

각자 마음에 담은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서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고백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방식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의 마음이 있다. 그것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생각하면 상실과 슬픔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엔딩 파티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만을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마지막까지 내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어떤 순간들이 나를 살아 있게 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끝을 축제로 바꾸는 상상이며, 이별을 품격 있는 감사로 전환하는 삶의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엔딩 파티는 웰다잉의 중요한 실천적 상징이 될 수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을 편안히 맞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관계를 정리하고,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나의 삶을 나답게 완성하는 과정이다. 엔딩 파티는 그 완성의 시간을 보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열어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오후에는 입관체험이 진행되었다.

그 시간은 말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입관체험은 단순히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보는 형식적 체험이 아니었다. 그 전에 우리는 세상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가. 누구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은가.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더 말하지 못했는가. 그 질문들은 조용했지만,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다.

 

▲ 최영숙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웰다잉의 의미와 삶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정인

  

특히 “내 생에 마지막 한 시간이 남았다면”이라는 교수님의 멘트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마지막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내려놓게 될까. 평소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순간에는 너무 작아지고,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어두었던 사람과 마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돈도, 명예도, 성취도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나눈 마음이다.

 

그 시간은 내게 다시 사람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리는 끊어내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미움은 조금 덜어내고, 고마움은 더 늦기 전에 표현하고, 사랑은 아끼지 않겠다는 마음의 정리이다.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는 순간, 몸은 고요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좁은 공간 안에서 나는 삶의 끝을 상상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죽음보다 삶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직 말할 수 있다는 것,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아직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아직 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처음에는 작은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떠나보낸 사람을 떠올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오래 무심했던 시간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 울음은 슬픔만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향한 후회이자, 사랑의 고백이었고,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관에서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입관 전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지만, 체험을 마친 뒤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있었다. 울고 난 뒤의 사람들은 더 맑아 보였다. 마치 죽음을 잠시 마주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삶의 문 앞에 선 듯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안아주고, 말없이 눈빛을 나누는 모습 속에서 나는 웰다잉 교육의 본질을 보았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말했다.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의 두번 째 봄이, 지금 여기에서 다시 피었습니다.

삶은 한 번만 피는 것이 아니다.

 

상처 이후에도 피고, 이별 이후에도 피고, 죽음을 마주한 뒤에도 다시 핀다. 젊은 날의 봄이 지나갔다고 해서 삶의 꽃이 모두 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오는 두번 째 봄은 더 조용하고, 더 깊고, 더 진실한 빛깔을 가지고 있다.

 

▲ 대한웰다잉협회 심화과정을 이끈 최영숙 교수가 환한 미소로 교육생들에게 삶을 사랑하는 웰다잉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정인

 

그날 함께한 교육생들의 얼굴에서 나는 그 두번 째 봄을 보았다. 울고 난 뒤 더 환해진 표정, 서로를 안아주던 따뜻한 손길, 삶을 다시 사랑하겠다는 조용한 다짐들. 그것은 분명히 다시 피어나는 꽃의 모습이었다. 웰다잉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교육이 아니라, 남은 삶을 다시 피워내게 하는 교육이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진실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운다.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죽음은 두려운 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깊은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 대한웰다잉협회의 심화과정 마지막 수업은 내게 많은 질문을 남겼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귀하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 파티를 연다면, 나는 누구를 초대하고 무엇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

 

웰다잉은 웰리빙과 함께일 때 본질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살아온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이며, 잘 산다는 것은 언젠가 맞이할 마지막 순간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웰다잉 교육은 노년만을 위한 교육도, 죽음을 앞둔 사람만을 위한 교육도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교육이다.

 

그날 나는 죽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삶을 배웠다. 이별을 연습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배웠다. 마지막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엔딩 파티는 내게 죽음의 장면이 아니라 삶의 절정처럼 다가왔다. 그것은 슬픔으로만 채워진 마지막이 아니라,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온 마음으로 인사하는 축제가 될 것이다. 삶의 시간을 함께 완성해온 사람들과 웃고, 울고, 고마움을 나누며, 내가 살아온 시간을 스스로 존중하는 의식이어야 한다.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러므로 우리는 더 사랑할 수 있다.

더 표현할 수 있고, 더 용서할 수 있으며,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지난 토요일의 하루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삶이 다시 빛난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사랑하라!

 

나는 삶을 다시 뜨겁게 사랑하기로 했다.

내 곁의 사람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미루어둔 고마움을 전하고,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며 사랑할 두번 째 봄이 활짝 피었습니다.

 

▲  대한웰다잉협회 심화과정 40기에 참여한 남성 교육생들이 수료식을 마친 뒤 최영숙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인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사랑하게 하는 가장 깊은 공부였다. 그리고 엔딩 파티는 그 공부의 끝에서 다시 발견한 삶의 언어였다. 마지막을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이별을 절망이 아니라 사랑의 축제로 바꾸는 일. 그것이야말로 웰다잉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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