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애물단지 생활숙박시설, 장기체류 수요 폭발에 제2의 전성기 올까? ④전국 8만 실 생활숙박시설, 워케이션·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관광 인프라로 거듭날 수 있을까[이트레블뉴스=김치환 기자] 전국 8만 실 생활숙박시설, 분쟁의 그늘을 벗어나 관광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각, 영업신고가 이루어진 전국 약 8만 실에 달하는 생활숙박시설은 기로에 서 있다. 일부는 이행강제금 부과를 앞두고 숙박업 신고와 용도변경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부실한 운영사의 무책임한 관리 아래 자산 가치가 날로 하락하고 있다.
생활숙박시설, 흔히 '생숙'이라 불리는 이 시설의 원형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그랜드호텔이 장기 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레지던스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한국의 복잡한 주택 계약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취사 시설이 갖춰진 레지던스는 큰 환영을 받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객실 점유율이 90%를 웃돌았다. 단기 투숙이 아닌 장기 체류, 주택이 아닌 생활 가능한 숙박, 외국인 비즈니스 수요를 겨냥한 시설, 이 세 가지가 생숙의 탄생 배경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부동산 시장 과열과 함께 생숙은 본래의 정체성에서 멀어졌다. 수익형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포장되어 분양되었고, 취사 가능 구조를 이용한 실거주 편법이 만연했다. 운영사들은 임대수익 극대화를 내세우며 서비스 품질보다 비용 절감에 집중했다. 그 결과 생숙은 관광업계에서 '저급 숙박시설'로, 투자자들에게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대한민국 관광시장은 생숙이 가장 잘 충족할 수 있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워케이션과 '한 달 살기' 같은 장기체류 수요가 급증했다. 온라인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1분기와 비교해 5일 이상·7일 이상 장기숙박 예약은 각각 532%, 581% 이상 상승했다. 취사 가능, 세탁 가능, 호텔식 하우스키핑, 장기 할인 요금을 제도적·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은 생숙이 유일하다.
한국관광공사 보고서는 워케이션 참여자 100만 명 유치 시 연간 약 3,500억 원의 직접지출 효과와 4조 5,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제주도는 2026년 워케이션 인구 10만 명을 목표로 활성화 계획을 마련했고, 강원·부산·경기 등 전국 지자체가 워케이션 지원 사업을 앞다투어 시행 중이다. 이 정책들의 핵심 인프라가 바로 장기 체류 가능한 숙박시설인데, 정작 워케이션 지원 지정 숙박시설에 생숙이 포함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비스 품질 미달과 운영 신뢰 부재가 그 이유다.
법무부가 해외 원격근무자의 국내 장기 체류를 허용하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한 것도 생숙에는 기회다. 취사 가능, 생활 밀착 서비스, 합리적인 장기 요금, 교통 접근성을 갖춘 생숙은 이 수요를 선점할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단, 외국인도 믿고 예약할 수 있는 운영 품질과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 흐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는 2021년 1,500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블렌디드 여행 시장이 2027년에는 3,6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힐튼, 메리어트, 하얏트, 윈덤 등 글로벌 호텔 체인들이 잇달아 장기 체류형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바르게 운영될 경우 생숙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지역 관광 생태계를 견인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제주·강원·부산·속초·여수 등 관광지 인근 생숙은 장기 체류 관광객을 지역 경제와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되고, 여의도·강남 등 도심 지역 생숙은 기업 출장자와 주재원 시장을 다시 공략할 수 있다. 올바른 운영 기준을 갖춘 생숙을 지자체 워케이션 사업의 공식 지정 숙박시설로 등재하면 점유율 향상과 브랜드 신뢰도 제고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
2026년 1월 국토교통부는 생활숙박시설 1객실 단위 운영을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 실증 사업을 승인했다. 그간 30실 이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숙박업 신고조차 어려웠던 소규모 생숙에게 새로운 활로가 열린 셈이다. 다만 1객실 단위 운영에 수반되는 법적 규제, 인력, 비용 등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아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충분한 실험 기간을 거쳐 진행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이유다.
결국 생숙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는 올바른 운영사다. 분쟁의 시설로 남을 것인지, 대한민국 관광시장의 실질적 인프라로 거듭날 것인지는 운영의 질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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