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트레블뉴스=김영석 기자] 천국에서 지옥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395번 북쪽으로 4시간 달리면 론 파인에 다다른다. 왼편 설산 아래 화려한 야생화로 뒤덮인 호수들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있는 환상적인 오솔길은 천성의 계곡을 걷는듯하다. 옥색 빛 호수와 장엄한 산의 아름다움이 눈에 아른거려 이곳에 왔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푹푹 빠지는 눈길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하늘거리는 야생화와 하얀 눈 덮인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하고 미끄러져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번에는 지옥을 한번 보라는 음성을 들은 듯 건너편 죽음의 계곡으로 차를 돌렸다.
395번 서쪽에는 천국의 계곡이 동쪽에는 죽음의 골짜기가 이웃하고 있다. 동편 데스밸리 국립공원으로 갔다. 살인 더위로 유명한 데스밸리는 기네스북에 56.7도로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기록됐다. 2023년 7월에는 더위로 2명이 죽었다. 한 사람은 하이킹코스에서 발견됐고, 다른 사람은 차 안에서 사망했다. 3~4월이 그래도 관광할 만하다. 7~8월은 50도를 넘나드는데 매달 10만 명이나 방문한다. 더위로 죽을 수 있다는 경고에도 데스밸리에 설치된 온도계와 인증 샷 찍으려는 인파가 몰린다.
나는 4월 말에 왔는데 온도가 섭씨 40도의 무더위였다. 작년 8월에는 천년에 한 번 날 수 있는 대홍수가 났다는 뉴스 본 기억이 난다. 올겨울은 비가 많이 와서 야생화가 만발하는 슈퍼 불름(Super bloom)이다.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꽃들이 도로변에 피어있다. 죽은 영혼들에 대한 자연의 위로일까.
단테스 전망대(Dante’s View)는 데스밸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1,669m에 있다. 이곳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지옥을 향한 원뿔 구조의 모습에 기인하여 이름 지어졌다. 아래를 바라보니 해수면보다 낮은 소금 평원이 구불구불 보인다.
땅 밑에 매몰되어 뜨거운 열기에 소금 바닥에서 고통을 받는 지옥이 연상된다. 저 앞에 우뚝 솟은 3,368m의 산꼭대기는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그 뒤에 있는 시에라 산맥들의 모습은 9개의 천계로 이루어진 천국으로 보인다. 지옥과 천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단테스 뷰 앞에 서 있는 나는 사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악마의 골프 코스(Devil’s Golf Course)는 북미에서 가장 낮은(해수면 아래 86m) 배드워터 분지에 있다. 이곳은 2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 눈으로 뒤덮인 것 같은 소금 평원은 수분이 열에 의해 증발하면서 지면이 결정체로 굳어지면서 생긴 것이다. 악마의 골프 코스는 삐죽삐죽 날카롭게 침식된 암염 구덩이 벌판이다.
밤에 기온이 떨어져 팽창 수축 작용으로 암염들이 갈라져 생겼다고 한다. 갈라지는 소리가 마치 티샷 날리는 소리 같아 악마의 골프 코스로 이름이 붙었다. 구덩이에 깊숙이 빠진 공을 악마만이 꺼낼 수 있나 보다. 잘못 밟다간 발이 빠져 빨려 들어갈 듯 섬뜩한 느낌이 든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으스스한 풍광이다.
이제는 사진 촬영의 명소로 발길을 돌린다. 차에서 내려 완만한 능선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자브리스키 포인트이다. 굴곡진 산등성이들이 베이지, 분홍과 자줏빛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보인다. 겹겹이 산줄기에 있는 암석들이 빛에 따라 다양한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여기서 골든 캐년으로 내려가는 탐방로가 있다.
하이킹하며 바로 옆에 폭포 절벽을 보는데 물은 없다. 폭우로 흘러내린 폭포자국만 남은 것이다. 예리한 칼로 촘촘히 조각해 놓은 듯한 협곡도 기기묘묘하다. 붉은 성당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 성당 건축물같이 보이는 거대한 암벽은 산화되어 붉은빛을 띤다. 날마다 신에게 예배를 올리는 붉은 성당이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티스트 드라이브는 15km 정도의 일방통행 길을 달리며 중간에 내려서 볼 수 있다. 낮은 구릉이나 작은 산 지형에 화산재와 광물이 섞여 퇴적했다. 물과 열에 의해 화학적으로 산화되면서 다양한 색상을 띠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팔레트를 석양에 방문하니 더욱 화려하고 울긋불긋하게 채색된 산을 보았다. 아티스트인 조물주가 지구에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여러 물감을 풀어 놓은 팔레트를 보는듯한 장관이다. 이 더위에도 누군가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한 걸음 다가가는 모습에 걱정이 앞선다. 죽음 같은 더위를 맛보는 데스밸리는 한번은 가볼 만한 이색적인 관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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