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영주 소수서원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쇠락하자, 퇴계 이황이

이성훈 | 기사입력 2019/09/30 [06:25]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영주 소수서원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쇠락하자, 퇴계 이황이

이성훈 | 입력 : 2019/09/30 [06:25]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하나다.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쇠락하자, 퇴계 이황이 1549년 경상관찰사 심통원을 통해 조정에 편액과 토지, 책, 노비를 하사하도록 건의했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액을 받은 소수서원 전경 _ 영주시청  


명종이 이를 받아들여 이듬해 친필 편액을 내렸으니, 조선에서 처음이다. 대제학 신광한이 왕명으로 서원 이름을 지을 때, 기폐지학소이수지(旣廢之學紹而修地 :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하다)라는 말에서 소수(紹修)를 가져왔다.  나라에서 세운 향교는 지금으로 보면 국립대학, 각 지방의 유림이 세운 서원은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다.

▲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대청에서 자옥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액서원은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립대학인 셈이다. 서원은 대개 자연 풍광이 빼어난 곳에 터를 잡았으며,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향교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입학하는 데 생원이나 진사 같은 자격을 두지만, 수업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학문을 하려는 이들에게 열린, 진정한 무상교육이다. 

▲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에 솔숲이 넓다  


족히 한 아름은 될 법한 소나무들이 소수서원 입구를 지킨다.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해보니, 평소 존경해온 안향이 태어난 곳이다. 안향은 고려 말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이다. 주세붕은 안향을 기리면서 숙수사 터에 백운동서원을 세우고, 소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그 가운데 150여 그루가 아직 남아 있다.

▲ 영주 소수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학당    


솔숲이 끝날 무렵,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가 보인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숙수사는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없어질 때 불타고, 당간지주만 남았다. 주세붕은 어진 목민관으로 칭송 받았는데, 백성이 산삼 공납으로 힘들어하자 소백산에서 산삼 종자를 채취해 인삼 재배에 성공한 인물이다.

▲ 강학당 밖에는 백운동, 안에는 소수서원 현판을 걸었다.  


소수서원 정문인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강학당이 나온다. 유생이 모여 스승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던 강당이다. 정면에 백운동, 내부에 소수서원 현판이 걸렸다. 소수서원 시작에 백운동서원이 있음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강학당은 사면에 툇마루를 두르고, 배흘림 양식으로 기둥을 세웠다. 문을 연 다음 들어 올리면 삼면이 트여 안팎의 구분이 없어진다. 자연을 고스란히 품어 하나 된 기분이랄까.

 

▲ 지락재 마루에서 바라본 소수서원 안뜰    


강당은 일반적으로 가로가 길고 뒤에 사당을 세우는데, 강학당은 특이하게 세로로 긴 형태에 사당인 문성공묘를 서쪽에 배치했다. 문성공묘에는 안향, 안축, 안보, 주세붕을 모신다. 선현에 제사를 올리고 유학을 공부하는 것이 서원의 기본이다. 강학당 뒤에는 유생을 가르치는 스승의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가 있고, 그 옆으로 유생이 기거하는 학구재와 지락재가 있다.

▲ 장서각과 정료대  


스승의 거처보다 낮고, 작게 만든 유생 기숙사에서 스승에게 예를 다하는 당시의 철학이 엿보인다. 강학당 옆 아담한 건물은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이며, 장서각 앞 돌기둥은 밤에 가로등 역할을 한 정료대다. 관솔 가지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혔다.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고 제물을 마련한 전사청, 안향과 주세붕 등의 초상을 모신 영정각, 소수서원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사료관 등도 경내에 있다.

 

▲ 죽계천과 솔숲을 감상하기 좋은 경렴정  


소수서원은 소백산에서 흘러내린 죽계천 옆 평지에 터를 닦았다. 사주문 오른쪽에 있는 경렴정은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운 이듬해 동쪽 물가에 지은 정자다. 은행나무 고목이 정자에 드리워 가을이면 노란 물결이 장관이다. 개울 건너 바위에 붉은 글씨가 보인다. 주세붕이 유교 사상을 한 글자로 표현해 경(敬) 자를 새긴 바위다. 그 옆으로 소나무 아래 놓인 정자는 퇴계 이황이 취한대라 이름 붙였다. 취한대 마루에 앉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소수서원 풍광이 볼 만하다.

 

▲ 취한대 마루에 앉으니 솔향기가 그윽하다    


소수서원에서 백운교나 죽계교를 건너면 소수박물관, 선비촌으로 이어진다. 소수박물관은 성리학과 선비 문화를 조명한 곳으로, 소수서원에서 보관하던 유물을 전시한다. 선비촌은 영주 지역의 선비들이 살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두암고택, 인동장씨종택, 김세기가옥, 김뢰진가옥, 해우당고택, 만죽재, 옥계정사 등 주요 고택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

 

▲ 영주 지역 주요 고택이 한자리에 모인 선비촌    


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 부르는 데는 소수서원이 길러낸 숱한 선비와 거기서 비롯된 선비 정신이 이후 독립운동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흔적을 따라 대한광복단기념관을 찾았다. 대한광복단은 1913년 채기중, 유창순, 유장열 등이 풍기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다. 채기중은 1915년 대구에서 박상진의 조선국권회복단과 통합해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좀 더 조직적으로 일본에 맞섰다. 대한광복단기념관은 조직 결성 과정과 활동, 주요 인물, 영주의 독립운동사에 관해 전시한다.

 

▲ 대한광복단기념관 내 전시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발원해 풍기 읍내를 지나 서천에 합류하는 금계천은 아담한 하천인데, 금계리에 이르러 제법 계곡 분위기를 띤다. 기암괴석에 키 큰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금선정이 있다. 정면 2칸에 측면 2칸으로, 벽체 없이 사면이 개방된 소박한 형태다. 풍기 사람도 아는 이가 드물 정도로 숨은 명소다. 정자 마루에 앉으면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고, 솔숲 사이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그 옛날 선비들이 와서 시를 쓰곤 했다는데, 지금은 여름철 물놀이하러 알음알음 찾는다. 느긋하게 앉아 책 한 권 읽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 소수서원-시원한 계곡과 어우러진 금선정    


영주 무섬마을(국가민속문화재 278호)은 내성천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 마치 물에 뜬 섬 같다 해서 이름 붙었다. 마을에 오래된 기와집이 많다. 1666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입향조 반남 박씨가 지은 만죽재고택을 비롯해 해우당고택, 김뢰진가옥, 김규진가옥 등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문화재가 즐비하다. 일제강점기에 마을의 교육기관이자 독립운동의 거점이 된 아도서숙은 터만 남은 것을 몇 해 전 복원했다.

 

▲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만죽재고택  


무섬마을의 명물은 마을 앞 내성천에 놓인 외나무다리다. 과거에 마을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장마나 태풍으로 떠내려가 해마다 새로 놓아야 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으며 독특한 체험을 하려는 이들이 일부러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 물 위에 걸린 외나무다리가 그 자체로 낭만이다.  


○ 당일여행 : 소수서원→선비촌→금선정→대한광복단기념관→무섬마을

 

○ 1박 2일 여행 : 첫날_금선정→대한광복단기념관→소수서원→선비촌→부석사→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 둘째날_삼판서고택→영주365시장→무섬마을


○ 관련 웹 사이트

 - 영주 문화관광 http://tour.yeongju.go.kr

 - 소수서원 www.yeongju.go.kr/open_content/sosuseowon/index.do

 - 선비촌 www.sunbichon.net

 - 대한광복단기념관 www.kwangbokdan.com

 - 무섬마을 www.무섬마을.com

 

 

○ 주변 볼거리 : 소백산, 죽령옛길, 인삼박물관, 여우생태관찰원, 국립산림치유원(다스림), 제민루 등 / 관광공사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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