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동 병산서원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낙동강에 발을 담근 병산이 푸른 절벽을

이성훈 | 기사입력 2019/09/25 [03:01]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동 병산서원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낙동강에 발을 담근 병산이 푸른 절벽을

이성훈 | 입력 : 2019/09/25 [03:01]

[이트레블뉴스=이성훈 기자] 안동 병산서원(사적 260호)은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낙동강에 발을 담근 병산이 푸른 절벽을 펼쳐놓는다. 아름다운 서원으로 꼽는 이유는 그림 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건물 안으로 들여놓은 솜씨 덕분이다. 만대루 앞에 서면 그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군더더기 없는 7칸 기둥 사이로 강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마주 선 사람도 진초록 풍경이 된다.

 

▲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에 임명된 서애는 권율과 이순신을 파격적으로 등용해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다. 명나라에 망명하려는 선조를 막아선 것은 충효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대동법의 모태인 작미법(作米法)을 시행했으며, 양반에게 병역의무를 주고, 천민도 공을 세우면 벼슬을 줬다. 그가 남긴 《징비록》(국보 132호)은 임진왜란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 병산서원의 첫인상은 자연에 몸을 낮춘 듯 보인다  


병산서원의 출발은 풍악서당이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풍악서당을 지나다가, 난리 중에도 모여 공부하는 이들에게 감동 받고 서책과 땅을 하사했다는 유서 깊은 서당이다. 1572년 서애의 뜻에 따라 서당을 이곳으로 옮겼다. 서애가 타계한 뒤 그를 추모하는 제자들이 존덕사를 짓고 위패를 봉안하면서 서원이 됐다. 1863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폐철되지 않고 남은 47곳 중 하나다.

 

▲ 안동 병산서원의 입교당. 자연을 서원 안으로 고스란히 들여놓은 솜씨가 놀랍다.  


병산서원으로 가는 초입은 여전히 흙길이다. 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낙동강을 따라 몇 굽이 휘돌아 가면 고요히 숨은 서원을 만난다. 병산서원은 요즘 배롱나무꽃 천지다. 입구부터 해사한 배롱나무꽃에 빼앗긴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복례문으로 들어선다. 나지막한 솟을삼문이다. 명성에 걸맞게 크고 화려한 문이 아니라 몸을 낮추고 자연에 엎드린 모습이다.

 

▲ 서애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 입구에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이다 라는 복례의 뜻을 새기고 들어서면 그 유명한 만대루가 보인다. 누마루를 떠받드는 기둥은 휜 나무를 그대로 썼고, 주춧돌은 다듬지 않은 투박한 돌이다. 인공의 냄새를 지운 건축 의도 때문일까.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양 느껴진다. 2층 마루로 오르는 계단은 거대한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만대루는 현재 보수 중이라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진면목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가 있다.

 

▲ 병산서원의 백미, 만대루    


서원의 중심인 입교당 마루에 앉으면 만대루가 한눈에 잡힌다.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강이 흐르고, 병산의 푸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만대루를 자세히 보면 거창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위아래 기둥만 휑하다. 자연을 즐기는 데 방해하는 요소를 최소화했다. 흔한 5칸 누각보다 2칸 넓게 7칸을 세워서 건물 안으로 강과 산을 2폭 더 끌어들였다. 만대루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서 따왔다고 한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늦은 오후까지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은 걸작에 꼭 맞는 이름이다.

 

▲ 병산서원의 중심인 입교당


입교당은 가르침을 바로 세우다라는 의미가 있는 강당이다. 입교당 양쪽으로 유생이 기거하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동재에는 상급생이, 서재에는 하급생이 머물렀다 한다. 입교당과 동재 사이로 돌아 뒤쪽으로 몇 걸음 옮기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배롱나무꽃이 하늘을 가린 채 꽃그늘을 드리웠다.

▲ 입교당 앞에 유생이 기거하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병산서원은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전국 사진작가들이 모여들 만큼 배롱나무꽃으로 유명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6그루를 포함해 모두 120여 그루가 붉은 꽃을 피운다. 약 400년 자란 보호수가 있는 곳은 존덕사 앞과 전사청 주변이다. 서애의 학문과 덕을 우러르는 존덕사, 배롱나무꽃에서 짙은 기품이 느껴지는 이유다.

 

▲ 전국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배롱나무꽃 명소    


병산서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안동 하회마을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88호)가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서애는 옥연정사에서 집필에 주력했다. 《징비록》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지난 일을 경계하여 우환을 삼가다라는 의지를 담은 책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원인과 전황을 꼼꼼히 기록했다. 문이 닫히는 날이 더러 있지만, 운 좋게 안으로 들어가면 마당에 잘 자란 소나무를 감상하고, 툇마루에 앉아 강변을 내려다보자.

 

▲ 서애가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


옥연정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부용대 450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넉넉한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부용대 정상이다.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마을을 감싸며 S 자형으로 흐르는 낙동강이 신비롭다. 서애 류성룡 하면 안동 하회마을(국가민속문화재 122호)을 빼놓을 수 없다.

▲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용대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마을이다. 정겨운 돌담과 고가가 어우러진 골목을 걷기만 해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양진당(보물 306호)은 풍산 류씨 대종택이다. 솟을대문과 대궐 같은 기와집이 한눈에 봐도 으리으리하다.

 

▲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 양진당    


양진당과 더불어 마을의 핵심 건물인 충효당(보물 414호)은 서애의 종택이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그를 흠모하는 후학들이 새로 지었다고 전한다. 서애가 평소 가장 중요시하고 몸소 실천한 사상이 충효다. 충효당 앞에는 하회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가 있고, 안에는 선생의 유품이 전시된 영모각이 있다.

 

▲ 서애의 유품이 전시된 영모각    


그 밖에도 북촌댁과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인 삼신당 등 볼거리가 많다. 다듬이질, 맷돌 돌리기 등 체험할 거리가 많고, 부채며 오방색 지갑이며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료 공연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관람도 필수 코스다. 공연은 매일 오후 2시에 시작한다(월요일 제외).

 

▲ 맷돌 돌리기, 다듬이질 등 체험할 거리가 많다  


풍산읍에 자리한 체화정은 배롱나무꽃이 피는 여름부터 초가을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붉은 꽃이 눈부신 배롱나무가 정자와 한 몸 같다. 정자 앞 연못에 배롱나무꽃이 그림자를 드리우면 멋이 배가 된다. 체화정 현판 뒤쪽의 담락재 현판은 단원 김홍도가 썼다고 한다. 김홍도가 안기찰방으로 있던 시절, 체화정에 반해 자주 찾았다는 소문이다.

 

▲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체화정    


○ 당일여행 : 병산서원→하회별신굿탈놀이→하회마을

 

○ 1박 2일 여행 : 첫날_병산서원→부용대→옥연정사→화천서원→체화정 / 둘째날_하회세계탈박물관→하회마을→하회별신굿탈놀이


○ 관련 웹 사이트

 - 안동관광정보센터(안동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tourandong.com

 - 병산서원 www.byeongsan.net

 - 안동하회마을 www.hahoe.or.kr

 

○ 주변 볼거리 : 봉정사, 안동구시장 찜닭골목, 권정생어린이문학관, 월영교 / 관광공사_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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